신황등교회

담임목사 칼럼

  • HOME > 신황등말씀 > 담임목사 칼럼
게시판
제목 20221106-하나님과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1-11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탄생한 교회를 우리는 개신교(Protestant)라고 불러요. 개신교를 영어로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데요, “저항한다.”는 뜻이에요. 무엇에 반대할까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었어요. 그래서 성경에 없는 것들을 교회가 행하고 있었는데요, 그것에 저항하며 생겨난 것이 개신교회에요. 개신교회를 또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도 불러요. 가톨릭교회가 왜 말씀에서 벗어났을까요?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아니에요. 처음엔 순수한 신앙열정으로 교회를 섬겼어요. 그런데 교회가 제도화되고, 힘과 권력을 얻게 되자 힘을 가진 사람들이, 당시로 보면 사제들이지요? 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대로, 교리와 법을 만들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지요? 하나님과 상관없는 교회가 된 거예요. 사실 유럽의 대성당들이 이 때 세워졌는데요,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은 안 계셨어요. 왜요? 당시 사람들은요, 거대하고, 높은 성당을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부와 기술과 명예를 뽐냈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타락했어요. 그래서 프랑스의 시인이요, 소설가였던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소설, “노트르담드파리에서 인간은 거대한 성당의 돌과 유리 위에 자신들의 역사를 썼다.”고 기록했어요.

 

그걸 경험했기에 개신교는요,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까요? 시간이 지나면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 돼요.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교회를 좌지우지해요. 그런 신학과 제도가 생겨나요. 예배와 모임이 진행돼요. 변질된 거지요? 그러면 교회는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100여 년 전, 목사안수를 받고 장대현 교회를 담임했던 길선주 목사님의 설교들을 모아 홍성사에서 길선주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어요.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평안남도에 사는 한 청년이 순진한 마음으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모인 회의는 얼마나 은혜로울까?” 기대하며 교단 총회에 참석하여 방청했어요. 예배를 드릴 때까지는 좋았는데요,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자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목사님이 일어나 소리를 지릅니다. 장로님이 일어나 반대하고요, 서로 얼굴을 붉히는 거예요.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요, 아니에요. 회의가 끝날 때까지 싸우는 거예요. 실망한 그 청년은요, 그 길로 교회를 떠났어요. 사도행전 2028절을 본문으로, “감독의 책임이라는 제목의 설교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혹시 멀리 있어 그분과 소통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닙니까?

 

댓글쓰기 ok
목록